지난 주간에 카나다 온타리오 주에 있는 피터보로에 다녀왔습니다. 한 교회에서 치유집회를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후배이신 담임목사님은 집회가 없는 낮 시간에 3시간 거리인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다고 가겠느냐고 했지만 사양했습니다. 전에 사이판에서 성전을 지었는데 봉헌식을 위해 오셨던 강 목사님께서 다른 분들이 다 관광을 가는데도 혼자서 싫다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 왔는데 관광부터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죄송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감동을 받았지요. 그래서 저도 가능하면 그 본을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호수가 많은 도시인지라 아침 식사 후에 운동 삼아 산책을 하자고 하여 나선 길에 시내 곳곳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곳 사람들은 집을 산 다음에는 보트를 사는 것이 소원이랍니다. 둘러보니 저도 보트를 타고 돌아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호수와 호수를 잇는 작은 강들이 많았습니다. 수위가 서로 다른 강을 연결하는 특이한 장치를 보았습니다. 102년 전에 건설한 콘크리트 구조물이었습니다. 보트를 싣고 수압에 의하여 20미터 정도를 직선으로 오르내리면서 높은 강에 배를 옮겨놓기도 하고 내려놓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명박 전 서울 시장이 대륙을 연결하는 운하를 만들겠다고 공약을 발표하면서 100미터 정도 되는 강과 강의 수위 차를 특이한 공법으로 해결한다고 한 신문기사를 읽었는데 이런 장치를 말하는 것임을 금방 깨달았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어느 초라한 비포장 도로 변에 있는 외롭고 허름한 집 한 채와 가족 묘지였습니다. 피터보로 시내에서 한 20분 정도 가니까 Scriven Drive가 나왔습니다. 우회전하여 조금 내려가니까 흉가 같은 한 집이 나오고, 안내판이 서 있었습니다. 어느 집에 가정교사로 일하던 사람이 시집을 발간했는데 그 중에 한 곡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모든 성도들의 애창곡이 되었다는 간단한 내용이었습니다.
불행한 인생을 산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약혼을 했는데 결혼식 전에 약혼녀가 수영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그 슬픔을 안고 카나다로 이민을 해서 평생 어머니를 모시고 혼자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만 어머니마저 중병에 걸렸습니다. 조용히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던 조셉은 영감을 받아 고백적인 시를 썼습니다.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 말고 기도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 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근심걱정 무거운 짐 아니진 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드리세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찬송487장)
가난하고 불행한 삶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극한 슬픔 속에서 더욱 빛나는 믿음으로 노래를 했습니다. 시를 읽는 이마다, 노래를 부르는 자마다 조셉 스크라이븐과 함께 친구 예수님의 품에 안겨서 위로를 받습니다. 삶의 여정에 따라, 당한 환란과 고난에 따라, 주님의 위로가 다릅니다. 경험한 은혜에 따라서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고백이 다릅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후 1:4). 조셉의 고난과 슬픔은 이렇게 승화한 것입니다. 아름다운 유산입니다. 1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의 심금을 울리며 하늘의 위로와 영감을 줍니다.
찬송이 계속 마음에 흘렀습니다. 나는 어떤 유산을 남길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유산을 남기시렵니까? 우리의 고난과 주님의 위로가 어우러진 멋진 유산을 꿈꿉니다!
건강한 둘로스 교회의 행복한 담임목사 황의정 드림